독서 9

책 : 흰

흰한강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흔들리거나, 금이 가거나, 부서지려는 순간에 당신을,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흰 것들을 생각한다.  21P 달떡 ・・ 29P 흰도시-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은 그날이었다.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

독서 2024.11.02

책 : 쉽게 사랑하고 어렵게 미워하고 싶지만

쉽게 사랑하고 어렵게 미워하고 싶지만구슬기 산문집   김소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존재하지만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회화로 기록한다.그곳들은 나의 아스라한 기억을 다시 불러오고, 무감각해졌던 감각들을 일깨운다.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들을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 바라보고 있는 풍경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감정들을 회화로 표현한다. 본인이 재현하는 풍경들은 단순히 낭만적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아닌 심리적 재현으로 재구성된 풍경화이다.        15P, 가만히 마를 때까지그러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마른 햇볕에 내어놓고 가만히 기다리면 곱게 말라 있다. 손이든 마음이든.  .. 26P, 하루아침에 갓 지은 마음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나왔어요.현관을 나서 전철역에 다다르면 ..

독서 2024.11.01

책 : Mazeppa

Mazeppa 김안 해설중 연옥으로의 한 걸음, 류수연 평론가 이 시의 모티브가 되었을 단테의 ⎡신곡⎦ ⎡신곡⎦은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는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mazeppa)을 불멸의 고전으로 만든 것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이어지는 여정 그 자체다. 시인의 언어는 느리고, 침착하며 때로 절제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는 역설적으로 그 안에 잠재된 불안을 노출한다. 마제파는 우크라이나의 영웅, 이반 스테파노비치 마제파를 가리킨다. 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그리하여 함정에 빠져버린 젊은 청년 기사로부터 시작된다. 폴란트 영주 가문의 기사였던 마제파는 아름다운 백작 부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로 인해 발가벗겨진 채 광야로 추방된다. 불명예스럽게 추락해버린 그는, 광야에서 생존하여 극적으로 구출되고, 훗..

독서 2024.11.01

책 : 아몬드

아몬드 작가 손원평 선천적으로 알렉시티미아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 감정을 찾아가고 사랑을 느끼는 성장 이야기 29P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40P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건,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은..

독서 2024.09.28

책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해설중 1. 인생은 아름답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그러니까 좋은 시는 rhyme(미적인 것)과 reason(논리적인 것)을 겸비한다. ・・・ 78P, 사실 별들이 움직이지 않는 물 위를 고요가 흘러간다는 사실물에 빠진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오늘 밤에도 그 애가 친지들의 심정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물을 무사히 건넌다는 사실한양대학교 옆 작은 돌다리에서 빠져 죽은 내 짝은 참 잘해줬다, 사실은- 늘 죽은 사람에게는 들려주지 못한 것이 많다, 사실일까사실 나는 건망증이 심하다죽은 사람에게는 들려주지 못한 것도 많을 텐데노래가 여기저기 떠도는 이유 같은 거그 사람이 꼭 죽어야 했던 이유 같은 거- 산 사람대로 죽은 사람대로 사실대로 짝이었던 친구의 죽음을 소재로 한 ..

독서 2024.09.07

책 :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서덕준 프롤로그 저에게 시는 미완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멍들고 체했던 마음을 해소하게 해준 나만의 세상이었습니다. 15P, 숲 이름 모를 숲속으로 사라지자 언어의 바깥으로 확 도망가버리자 지도의 찢긴 부분 속으로 아무도 모르는 그 숲속으로 없어져버리자. 노래를 부르면 곧 새가 되고 숲속을 달리면 내가 사슴이 될 수 있는 그 환상의 숲으로. 이름이 없어도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으로. 18P, 초록 초록을 사랑하는 요즘 꽃말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모든 것이 다시 재생되는 계절에 덩달아 피는 식물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저 너머 능선으로 구름 자국이 돋고 마치 바람에도 색깔이 있는 것처럼 푸른 냄새가 날아오는 시간 줄기 사이에 꽃봉오리가 이야기할까..

독서 2024.09.07

책 : 냉정과 열정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chapter 3. 조용한 생활, 47P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책 다섯 권을 돌려준다. 석조 건물의 싸늘한 조용함과 높은 천장. 치과 병원과 발레 교실, 그리고 도서관이 내가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장소다. - 책을 좋아하면서, 정작 사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오이는. - 읽고 싶을 뿐이지, 갖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chapter 4. 조용한 생활 2, 65P "저기, 봐요, 저기에도"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안젤라는 잎 사이로 그 소박한 꽃을 찾아내고는, 정말 있네, 란 표정을 짓는다. "늘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모든 것에 빠짐없이 흥미를 보이는 안젤라는, 가는-그러나 억센- 손가락 끝으로 잎사귀들을 헤치고 꽃들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벌써 사흘째, 이..

독서 2024.08.16

책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건 시인의 말 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풀 한 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발문 중 배가 부르면 시가 안 될까봐 하루에 한 끼 먹고 쓴다는 이야기의 장본인 고명재 시인. 세상을 돌보듯 말을 돌보는 당신의 다정함 이 시집은 선물 받은 시집이고, 현대시라는거 꽤나 어렵고 이해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안겨준 책이다 그때문에 선물 받은지 꽤 됐는데 이제서야 다 읽게 됐고, 한 번 읽을 때 2-3장씩만 읽을 수 밖에 없던.. 고명재 시인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그제서야 조금씩 이해된 시들이 몇몇 있었고 결국엔 생각과 상상이라는거 내 ..

독서 2024.07.26

책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 - 사실적 독해 - 추론적 독해 ex) 속담, 티끌모아 태산 -> 작은 것도 꾸준히 모으면 큰 것을 이룰 수 있다 - 비판적 독해 내용이 적절한지, 근거가 타당한지. 헛다리 짚지 않도록.. - 창의적 독해 - 감상적 독해 해석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타당성은 있어야 하므로 지나치게 기이한 해석은 경계하도록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발문 중 박준의 희소한 가치는 그가 같은 세대의 시인들 중 드물게도 모국어의 역사적 심미성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 관념어를 거의 쓰지 않고 경어체를 구사한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시집은 사계절에 대응한다 ⎡그해 봄에⎦(1부) , ⎡여름의 일⎦(2부) , ⎡가을의 말⎦(3부), ⎡겨울의 말⎦(4부) '그해'라는 시어가 ..

독서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