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 : 냉정과 열정 사이

J:won 2024. 8. 16. 00:26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chapter 3. 조용한 생활, 47P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책 다섯 권을 돌려준다. 석조 건물의 싸늘한 조용함과 높은 천장. 치과 병원과 발레 교실, 그리고 도서관이 내가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장소다. 
- 책을 좋아하면서, 정작 사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오이는. 
- 읽고 싶을 뿐이지, 갖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chapter 4. 조용한 생활 2, 65P
"저기, 봐요, 저기에도"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안젤라는 잎 사이로 그 소박한 꽃을 찾아내고는, 정말 있네, 란 표정을 짓는다.
"늘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모든 것에 빠짐없이 흥미를 보이는 안젤라는, 가는-그러나 억센- 손가락 끝으로 잎사귀들을 헤치고 꽃들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벌써 사흘째, 이렇게 안젤라와 산책을 하고 있다. 일이 없는 날에는 반드시 나가자고 한다.
⎡"예쁘네."
안젤라는 말하고,
"누구의 눈길도 끌지 않는데."
라고 신비로운 조용함으로 덧붙였다.⎦
 
63P
우리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 ⎡평화롭고 조용하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그러나 모르는 사람끼리 어쩌다 보니 동석을 하게 된 것 처럼 묘한 거리감 속에서 식사를 했다. 눈앞에 있어도, 형제자매라도, 가슴속은 이렇게 멀다. 세계의 끝처럼.⎦
 
chapter 5. 도쿄, 91P
아가타 쥰세이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 학생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 무엇이다. 
 
93P
항상 상대방을 이해시키려 했고, 그 이상으로 이해받고 싶어 했다. 그리고,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싶으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버리곤 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다는 듯.
 
98~100P  (98P의 시작부터 100P의 끝까지)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워,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코르크에서 이미 와인 냄새는 사라져 없고, 그저 건조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날 뿐이다.
- 아가타 쥰세이는 과거다. 어깨까지 닿는 머리칼도, 단정한 콧날도,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 투명한 눈도.
 
chapter 6. 가을바람, 101-102P
- 무위를 싫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웃는다. 떠든다. 걷는다. 생각한다. 먹는다. 그린다. 찾는다. 쳐다본다. 달린다. 노래한다. 그린다. 배운다.
쥰세이는 동사의 보고였다. 만진다. 사랑한다. 가르친다. 외출한다. 본다. 사랑한다. 느낀다. 슬퍼한다. 사랑한다. 화를 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욱 사랑한다. 운다. 상처 입는다. 상처 입힌다. 
 
105P
 
117P
"또 도서관에 들렀다 왔니?"
내가 갖고 있는 책에 눈길을 멈추고 다니엘라가 말한다. 내가 si, 라고 짧게 대답하자, 다니엘라는 눈으로만 환하게 웃었다.
"비가 내릴 것 같다"
모스그린과 노랑과 검정을 기조로 한 모자이크 타일 테이블에 턱을 괴고 말한다.
"독서하기에 좋은 날씨잖아"
내가 농담 비슷하게 대답하자, 다니엘라는 목을 움츠리고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매력이지"라고 말한다.
"변한다는 것도."⎦
조그만 새우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으며 내가 말했다. 
 
119P
나는 대답하고, 한 손을 눈 위로 올려 햇볕을 가렸다.
"마빈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거대하고 장엄한 두오모의 대성당을 올려다보면서 안젤라가 말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chapter 7. 회색 그림자, 127P
알베르토에게 말했다. 
"보석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만지고 싶을 뿐, 그런 정도로만 관계하고 싶어요."
알베르토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잘 모르겠네요. 만드는 것은 만지는 것이 아닌가요? 관계하는 게 아닌가요?"
하얀 피부, 온몸이 풀꽃처럼 가늘고 나긋나긋한 알베르토.
"만들다 보면 지나치게 되잖아요. 너무 만지고 너무 관계하고."
 
chapter 9. 편지, 154P
나는 어찌된 셈인지 식물을 죄 죽여버려. 
 
- "넌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페데리카가 말해, 나는 놀라 얼굴을 들었다. 아오이는 변했어. 다니엘라도 알베르토도 그렇게 말했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 자신이 알고 있다.
"변하지 않았다고요?"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말했다. 페데리카는 나의 목소리에는 신경을 안쓰는 척했다.
페데리카가 빙긋 웃어, 나는 갑자기 울고 싶은 기분이 된다. 
페데리카의 뼈가 불거진 손이 내 무릎을 톡톡 쳤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야."
 
156P
여기서 태어나, 긴 생애를 여기서 보내고, 여기서 생을 마감할 페데리카와 지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가혹함과 편안함을 동경하곤 한다.
 
- 달리 돌아가야 할 장소가 있다는 기분. 자기가 외부인이라는 자각.
내가 있어야 할 장소.
 
- 알기는 하겠는데, 하지만 역시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싶은데. 적어도, 유랑할 틈새가 있다는 것은.
유랑할 틈새. 나는 그 말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158P
- 느긋하게 여기거라.
페데리카가 말했다.
- 너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정직하고 신중하고.
정직하고 신중하고.
 
- 나는 당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
 
160P
 
chapter 10. 욕조, 180P
그 날 밤 나의 잠은 얕았고, 밤중에 몇 번이나 눈을 떠야만 했다. 그리고 새벽녘에는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81P
쥰세이는, 늘 쥰세이밖에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이름을 발음했다. 모든 언어를, 성실하게, 애정을 담아.
나는 그가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했다.
아오이. 
아주 조금 주저하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 목소리의 온도를 좋아했다.
 
184P
- 기묘한 틈이 생겼다.
- 다시 틈이 생겼지만, 이번의 틈은 영원처럼 생각되었다. 
- 그 순간, 나는 완벽하게 이해했다. 나는 이 사람을 잃을 것이다. 지금 그야말로 잃으려 하고 있다.
 
chapter 11. 있을 곳, 190P
- 적어도 할 일이 있으니까 마음이 가라앉는다. 일은 정신을 안정시켜준다.(모순적이게도) 
- 책벌레. 
어릴 적 들은 말 그대로, 가게에서도 손님이 없을 때는 책을 읽는다. 결국, 사람은 그다지 성장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192P
"인생이 행복하게 느껴지는군요."그 말은 왠지 나를 몹시 고독하게 만들었다.
 
194P
잠 못드는 밤, 나는 사람을 그리워함과 애정을 혼동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매사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199P
고독할 때, 친절과 우정은 고독을 더욱 조장한다. 겨울은 기억을 소생시키는 계절이다.
 
200P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했다.
 
202P
하루하루가 그저 흘러간다. 내 바깥에서.
 
chapter 12. 이야기, 203P~
 
209P
마빈에게는 마빈이 있어야 할 장소가 있고, 살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211P
쥰세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그만큼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 사랑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216P
"봄은 출발의 계절이에요. 만남과 헤어짐의, 그리고 출발의."
마치 우리가 9월을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이라고 덧붙이자, -
 
223P
사랑이란 이렇게 거대하고 고요하며, 흔들림 없는 것이었을까.
 
chapter 13. 햇살, 232P
비현실감. 그건 말 그대로 비현실감이었다. 빛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하지만 그것이 환상이 빚어내는 빛의 숭고함이란 것을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환상이 빚어내는 빛. 그것은 일몰 같은 숭고함으로, 우리의 온 몸을 구석구석 채웠다.
 
236P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인생이 있다.
 
242P
생각해보면, 나는 붙잡아주지 않는 쥰세이의 올바름과 성실함을 사랑한 것이다. 
 
 
역자의 말
 어떤 사랑에는 희망과 절망이 있고, 애정과 증오가 있고, 오해와 이해가 있고, 포옹과 배척이 있듯, 그 모든 양극이 한데 어우러져야 온전한 사랑이듯 -
 
 
 
Rosso편 마무리.
이렇게 끝이구나 생각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Blue




 
 
 
 
 
 
chapter 1. 인형의 발, 10P
왜 사람에겐 만남이란게 있을까. 그런 -의문이, 이 르네상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거리에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나처럼 목에 통증을 느끼면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래, 저 사람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거야, 하고 내 멋대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11P
인간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동물이다. 
망각에는 특별한 노력 따위는 필요도 없는 것이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일들 따윈, 거의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는게 보통이다.
어느 때 문득,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걸 또 머릿속에 새겨두지 않으니, 기억이란 덧없는 아지랑이의 날개처럼 햇살 아래 녹아내려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으려 하면 할 수록 아오이는 기억 속에서, 이를테면 횡당보도를 건너갈 때, 지각하지 않으려고 마구 달릴때, 심할 경우는 메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망령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13P
스케치의 피사체가 되고 있을 동안 가끔 아오이를 생각한다. 옷을 걸치지 않은 탓에, 마음이 대담해지면 질수록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먼 과거로 날아가 아오이를 만난다. 
 
17P
과거가 너무도 거대하고 잔혹해서, 내 마음이 현실에 발을 내리지 못할 따름이라고 자기 분석해보기도 한다. 너무도 생생한 아오이와의 나날들, 그 망령과도 같은 과거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 햇빛은 여전히 쿠폴라 위에 머물러 있다.
나는 저 햇살을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햇살을 잘게 부수는 바람을 기뻐해야 할까.
 
19-20P
사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그들의 존재를 느끼면서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 복원 일에서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리는 직업・・・・・・.
 
22P
이탈리아어로 르네상스를 'Rinasciménto'라 한다. 원래는 '재생'이란 뜻이지만, 15~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 나는 이 거리에서 나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을까. 내 안에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을까.
 
 
chapter 2. 5월, 29P
나는 도쿄의 5월을 좋아한다. 매화와 벚꽃이 활짝 피는 3월이나 4월보다도 싱그러운 새잎이 무성한 5월이 더 좋다.
어디를 보나 똑같은 무기물적인 거리에서 푸른 가로수의 싱그러운 호흡은 도쿄에서 이방인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구원의 녹음이었다.
입학기의 혼란도 지나고,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서 도쿄를 차분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 것도 5월의 일이다. 그렇게 낯설고 정들지 않던 도쿄의 5월은 특별한 시간으로 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5월을 좋아하는 나로선 좋아하는 구절
 
38P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우울한 눈길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현실을 벗어나 그녀만이 아는 공간 속으로, 그 시선은 헤엄쳐가고 있었다.
다소 염세적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그런 눈동자였다.
나는 아오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늘 마음에 두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보려 하는 것을 같이 보고 싶은 바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물 같은 여자였다.
 
40P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
 
41-2P
-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
"era una giornata come quélla di iéri(어제와 똑같은 하루였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인수는 그 말을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따라한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였죠. 
이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언제든 어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는 조금 전이지만 내일은 영원히 손을 뻗칠 수 없는 저편에 있다. ⎦
 
-"우리 파티나 할까"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인수와 메미를 향해 말했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재빨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무슨 파티?"
인수가 서툰 일본어로 메미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냉장고를 뒤지면서, 오늘은 옛 애인의 생일이야, 하고 빠르게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메미는 엣, 뭐라고?, 하고 되물었지만, 
인수는 씁쓸한 미소를 떠올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chapter 3. 조용한 호흡, 46P
- 생명을 되찾아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갈 것임에 틀림없다. 
- 화가는 살아있다. 그의 혼이 여기있으므로.
 
쥰세이의 그림 이야기. 
그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동시에
복원사에 대한 직업에 대해서도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된 페이지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선 또 하나의 의미가 부여된 책
 
47P
"약속은 미래야. 추억은 과거. 추억과 약속은 의미가 전혀 다르겠지."
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빛의 샤워를 받은 그 온화한 얼굴의 투명한 피부가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래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늘 우리를 초조하게 해. 그렇지만 초조해 하면 안돼.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반드시 찾아오는거니까."⎦
선생의 눈동자를 가만히 엿보았다. 
 
"그렇지만 그 미래에는 희망이 별로 없어요."
선생은 미소를 거두었다.
"내게는 고통스러운 미래지요."
"・・・・・・희망이 적건, 고통스럽건,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한 포기해선 안돼."
그렇게 말하고 내 어깨를 탁탁 쳤다."자아, 이 거리를 잘 봐. 이 곳은 과거로 역행하는 거리야. 누구든 과거를 살아가고 있어. - 역사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 거리."- "거리뿐만이 아냐.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이 거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야하만 해.  -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그래도 이 곳 사람들은 과거에서 살기를 원해. 적어도 미래 따위는 없으니까. 희망 제로가 아닌 미래라도 있으니 쥰세이는 행복한 거야."
 
57-8P
과거만이 가득한 거리에서 현대와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자동차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인지 드라이버는 마치 이성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표출하듯이 맹렬하게 달린다. 
 
chapter 4. 가을 바람,63P
너무 서둘지 말고 그 길에 정진해주기를,
 
chapter 5. 회색 그림자, 79P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의 충격을 상상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메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 무릎에 볼을 부볐다. 그러고는 허리에 손을 두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88P
죽음을 서둘지 않고, 내가 성장하기를 기다려주었다면, 내가 상처 입은 어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을텐데, 그것만이 애달팠다.
 
97P
만날 것을 믿고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문득, 과거의 약속을 생생한 현실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chapter 6. 인생이란, 111P
"그 아픔을 잊지마. 인생이 얼마나 처절한지, 조금이나마 느껴둬."
 
112P
일흔다섯의 노인이 혼자서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너무도 믿음직스러웠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몸 저 안쪽에서 웃음이 마구 솟구쳐 올랐다.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chapter 7. 과거의 목소리, 미래의 목소리, 119P
과거란 무엇인가,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과거는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일까. 과거를 복원해온 나는 이 거리에서 살아갈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거리의 속도 속에서 과연 나는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 사람은 모두 미래를 향해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 과거와 화해하면서 미래로 오르는 길
 
125P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냉정 속에 열정을 숨기고 걸어가는 듯한・・・・・・.
 
chapter 8. 엷은 핑크빛 기억, 134P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추억은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던져진 짐짝처럼 버려진다. 
시간은 흐른다.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던 일들이, 매 순간 손이 닿지 않는 먼 옛날의 사건이 되어 희미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시간은 흐른다. 인간은 문득 기억의 원천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물 흘린다. 
 
chapter 9. 인연의 사슬,150P
편지를 썼다는 것, 또 그것을 우체함에 넣었다는 그 사실에 의해, 무엇 때문인지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아오이를 잊겠다고 결의했다. 
오늘날까지, 내 가슴속의 아오이는 집요하게 일상 속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독감을 한 고비 넘긴 것처럼 모든 것이 가벼워졌다. 
아니, 그것은 가벼움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움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너무 무거워서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162-3P
다음 날부터,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편지를 보내고서 이윽고 해방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럽지 않은가. -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뒤얽혀, 나를 바닥없는 늪 속으로 빠뜨리는 것 같았다. 
 
chapter 11. 3월, 194P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없다. 그래서, 그날이 그리워, 라는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팝송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다. ⎦
 
199P
-죽음을 알리자, 슬픔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고, 조용히 읊조리며 
 
chapter 12. 석양, 210P
그러나 내일은 무얼까. 이렇다 할 일도 없이 평화로운 하루가 저물고, 긴 밤이 지나면 내일이 찾아올 것이고, 난 또다시 인생의 쓴맛을 봐야할 것이다. 
 
211P
인간이란 헤어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 그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 모두 새로운 만남을 필요로 하고 있다. 
 
chapter 12. 새로운 백년, 228P
만남이라는 기세를 타고 우리의 열정에는 불이 붙고, 냉정에는 물이 뿌려졌다. 
 
231P
그리움만 간직한 냉정한 동창회
 
234P
망막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열정이 냉정에 떠밀려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 세상의 밤이 아침에게 떠밀려 사라지는 것과도 같았다.
 
239P 
나는 가슴속에서 작은 열정 하나가 반격에 나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 과거도 미래도 퇴색하고, 현재만이 빛을 발한다. 시원스러운 바람이 광장을 불어가고, 나는 바람의 흐름에 눈길을 고정시킨다. 사방팔방에서 두오모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돌길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를 이길 수 없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일순간이며, 그것은 열정이 부딪쳐 일으키는 스파크 그 자체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현재는 점이 아니라, 영원이 계속되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내 가슴을 때렸다. 나는 과거를 되살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과 망설임 때문에 모든 것을 향해 등을 돌려버리면, 새로운 기회는 싹이 잘려 다시는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못할 것이다. 후회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열차가 나를 데리고 가는 그곳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백 년을 살아갈 것을 맹세하면서. 
"새로운 백 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유럽 국제 특급의 트랩에 오른발을 올렸다.
 
 


 
 
 


 
 
 
Rosso편을 읽고.
생각보다 기대 이하네 라는 아쉬움이 있었고,
마지막 chapter 11~13 을 읽을 땐 그제서야 이 책이 잘 읽혔고, 
아오이의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채 책은 마무리됐다.
 
Blue편을 읽고.
Rosso편의 결말에 대하여 생각을 전하니 친구가 "아직 blue편 안읽었지" 하고 되물어 다른 무언가가 있나보다 라는 생각을 안고 책을 읽어나갔다. 첫 시작부터 감탄하며 읽었고, chapter 10을 시작한 첫 구절을 포함하여 책을 읽은 모든 시간 집중을 안한 순간이 없었다.
양억관 번역가가 번역한 책들을 찾아보고 싶다 생각할만큼 표현들이 너무 좋았다.
마지막 13편은 결국 쥰세이와 아오이의 결말이 썩 원하지 않던 결말이 되어버릴 것 같은 전개였다.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그리움과 염원들이 결국 사랑은 아니었다는, 그리고 그 긴 시간을 고작 4일만에 탐하려 했고, 고작 그 4일동안 긴 시간을 헤아리기엔 너무 멀어진, 변해버린 아오이와 쥰세이의 모습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 이 두 권의 책은 Blue편의 마지막 페이지를 위한 책이 아니었을까싶다. 결국 과거를 벗어나 현재를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 지난 과거는 사랑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아무렴 다시 사랑을 재시작해보기 위해 발을 내딛는 쥰세이로 완결이 난다.
 
rosso편에서의 아오이와쥰세이의 사랑은 결말이 났지만, blue편에서의 아오이와쥰세이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야기 저편에서 아오이와 쥰세이는 결국 밀라노의 기차역에서 만났겠지라는 아마도 내 상상 속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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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뒷편에 '5월보다 더 먼 미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구는 5월에 태어난 나를 기쁘게 해  
매년 나의 5월이 행복으로 가득차진 않았지만 유난히 5월에 소중한 것들을 많이 담아왔는데
5월을 좋아하는 내게 5월을 더욱더 좋아하도록 만들어준.
 
blue편도 소장해야겠다. 아니 blue편을 소장해야겠다라는 냉정과 열정 사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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