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 : Mazeppa

J:won 2024. 11. 1. 22:43

 
 
 
 


Mazeppa

김안







해설중
 
연옥으로의 한 걸음, 류수연 평론가
 
이 시의 모티브가 되었을 단테의 ⎡신곡⎦
⎡신곡⎦은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는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mazeppa)을 불멸의 고전으로 만든 것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이어지는 여정 그 자체다. 
 
시인의 언어는 느리고, 침착하며 때로 절제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는 역설적으로 그 안에 잠재된 불안을 노출한다. 
 
 
마제파는 우크라이나의 영웅, 이반 스테파노비치 마제파를 가리킨다. 
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그리하여 함정에 빠져버린 젊은 청년 기사로부터 시작된다. 
폴란트 영주 가문의 기사였던 마제파는 아름다운 백작 부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로 인해 발가벗겨진 채 광야로 추방된다. 
불명예스럽게 추락해버린 그는, 광야에서 생존하여 극적으로 구출되고, 훗날 우크라이나의 독립 영웅이 된다. 
이 마제파의 선과 악의 경계에서 마침내 극한을 딛고 일어나 영웅이 되는 한 사내의 서사는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어 다양한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김안이 주목한 것은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장 나약했던 한 사내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맨몸으로 버려져 광야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 그리고 부끄러울 정도로 피폐해져 한없이 추레해진 한 사내의 초라한 몰골, 그 위에 또 다른 얼굴을 겹쳐놓는다. 그것은 '항상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전진해야하는'(mazeppa) 숙명을 지닌 자, 바로 시인 자신의 얼굴이다.
 
지옥은 결코 멀지 않다. 일상의 곁에 붙어있다. 고요히 몸을 감추고 있다가 불현듯, 가장 익숙하고 낯익은 곳에서 자각된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에 휘말리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과 일상의 거리를, 그 미묘한 간극을 결코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수많은 수사와 비유 안에 갇혀 있던 시인과 달리, - 아무런 여과 없이 온전히 그 죽음에 공감했다. 
 
 
지옥에서 연옥으로 이어지는 과정.
지옥,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가 되어 시를 이룬다. 
 
 



 
11P, Mazeppa
- 나는 실패하고, 나는 전진하기에, 이것은 나의 몫이므로.
- 죄의식과 편견, 무능과 순수, 게으름과 욕망
- 희망과 삶의 전진
-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깊고 어두운 약물의 이름을.
 
22P, 뒤풀이
내 질문들은 자꾸만 어리석어지고, 어리석어지니 입을 틀어막고,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선의와 이토록 불가해한 다정함이 가득하니,
나는 그저 진부함과 유치함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그 아래 개미들이 지고 가는 긴긴 행렬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도 - 
그것들이 한 무리가 되어 들어가는 구멍의 어둠을 내내 쳐다보면서도, 
도통 마음에는 뿔도 자라나지 않고 근육도 붙지 않으니,
이 다정한 세상에서 암장당하는 것을 이제 내 몸에 없는 것들이라 치부하고 돌아서자.
내겐 이제 아무런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으니, 이제는 마음껏 세상과 상관하자.
 
- 드잡이하지 않을 만큼만 시끄럽고, 경멸하고, 춤추고, 사랑하는구나,
한껏 볼만한 영혼으로 차오르는구나.
 
23P, 무의식
- 세계의 절반이 어둠이고 그 남은 절반이 빛이라는 뻔한 술수.
 노을이 지고, 
한쪽 눈구멍에는 태양을,
남은 한쪽 눈구멍에는 달을 넣은 거인의 와상에 소스라칠 때,
등 뒤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생면부지의 지난 얼굴들
 
31P, 끽다거
이른 겨울이므로 사람들의 주머니에 햇빛 몇 잎 부족할 것이다. 
투명하게 얼어붙은 숲 자락과 마을. 하늘에서 새 한 마리 떨어지는 소리. 
겨울에는 겨울의 소리가 있고 겨울의 언어가 있으므로, 나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거기 언 채로 혼자 서 있는 것들은 차갑고 투명한 저주에 걸려 돌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치자.
이것은 사랑이므로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돌아보고 죽은 것들 사이로 끝없이 연기되었던 고백, 온종일 우리고 있던 쓴 차,
함께 나눈 둥근 모음들, 구겨진 신발 뒤축과, 그 안에 가득하던 바람, 우리를 온종일 떠들게 만들었던 모든 것을. 
나는 이제 제때 차를 우려낼 줄 알고, 가느다란 햇빛 아래 가지런히 찻잔을 놓을 줄도 안다. 그리고 나는 창을 열고 서 있다.
몸과 마음에서 회색 연기를 뿜으며, 낯선 저녁 앞에 선 노인처럼. 
 
34P, 백수광부
여보, 이 편지는 매우 길 것이오
기억하다시피, 맨 처음 우리는 강물이었소
함께 흐르며 부드럽게 굴욕당하고 
유연하게 증오하는 법을 배우며 여기는 우리가 지은 집
허나 욕망은 결코 닳지 않고
여보, 서로를 닮게 만들지
세속은 우리를 닮게 하고 인내를 닳게 하고
치렁치렁 늘어난 마음의 성난 꼬리를 밟으며 
우리의 딸은 이 집을 과자처럼 먹으며 자라나고
시간은 이 어린 기쁨의 사제도, 우리도
서로를 성실히 미워하게 만들겠지만
이 우람한 침묵이 기어이 사랑이라면
왜 그러지 않겠소 사랑이므로
나는 나의 꿈과 잡문 들을 멈출 테지만
모두 잠든 밤, 창밖으로는 붉은 우박이 쏟아지고
나무와 새 들은 도망가고 나는 
밤새 귀신의 말을 목격했지

여보,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조금 더 길어진다오
나는 조금 더 출렁이며 살아진다오

나는 당신이 내 방으로 들어오게 될까 봐 두렵소
얼굴 없는 기억의 물살에 휩쓸리게 될까 봐 두렵소
여보, 나는 당신의 침묵이 사랑이라 믿고 있소
사랑이라면 가능하다면 나를 멈추게 해주시오
 
- 밤과 물 사이에서 소리와 어둠 사이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일을 떠올리며
 
43P, 귀신통
어떤 불행들이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당연한 고통이지만, 그 당연함은 당연할 수 없는 것이고, 각자가 지닌 생활의 질감과 불행이 당연함과 뒤섞인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다.
마음껏 나의 불행과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견줄 수도 없었고, 이 불행의 밀도를 측량하는 기준 따위는, 다른 이들의 불행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 이 차갑고 어두운 삶 속에 어떤 날카로운 것이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46P, 동백
베란다 끝까지 나를 떠미는 상황이 있다. 
베란다 끝에서 내 몸을 떠미는 환상도 있다. 이미 떨어졌으나 여전히 그 끝에 서 있는 눈먼 이생도 있다.
무겁고 헐거운 생활의 목을 천장에 걸어둬도
우울한 조국을 뉘어 증오의 염을 끝내도
부서진 피리가 내는 검붉은 울음 소리가 있다.
 
- 붉게 서서히 가죽이 벗겨진 채로
 
54P, 대학시절
우린 조금씩 전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선생의 말을 받아적고 있었다. 확신에 차 있는 늙은 선생의 흰 셔츠가 바람에 부풀러 올라 있었다, 곧 환하게 떠오를 것처럼. 그 전진은 곧 죽어감을 말하겠지만 말이죠. 
- 씌어질 것과 씌어져야 할 것. 내 노트의 마지막은 그렇게 씌어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그런 것들을 고민했다. 나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너머에 있는 사람들. 낡은 노트를 덮는다. 강의 준비를 마친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발이 없다. 믿음은 언제 끝날까. 늙은 선생이, 노래방에서 여학생을 껴안고 춤을 추며 몸을 쓰다듬는 장면을 본 날도 그랬다. 모두가 박수를 치고 있었고, 난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낮고 얕은 도덕들. 덜그럭거리다가, 걷다가, 전진하다가 귀를 뜯어버렸었다. 통증은 다친 부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감지한 뇌가 보내는 멈추지 않는 비상벨. 씌어진과 씌어져야할 것의 거리. 
말해진 것들과 기대하는 말들. 말과 몸이 멀듯, 아프지 않았다. -
 
60P, 물과 자전
또 당신이로군. 홀로 앉아 물컵을 응시하던 그가 이젠 포기했다는 듯 말한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습니까. 그는 창백한 얼굴을 종이처럼 구겼다.
흘러가는 것이지. 그는 계속 물컵을 응시했다. 흐르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것을 마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것이 뭔지 아는가. 물. 물. 우리는 물이어서 결국 흐르다, 흐르다 만나지요, 우리처럼. 텅 빈 식당에 내가 힘주어 말한 것들이 울렸다.
물﹣물﹣우리처럼﹣우리처럼﹣. 그는 물컵에 검지 끝을 담갔다 뺐다. 그리고 컵 주둥이를 힘껏 누르며 손가락을 돌렸다.
그 소리로 나의 말을 잠재웠다. 자네는 물의 소리를 들은 적 없군. 그저 돌아가는 것일 뿐이지. 그는 내게 물컵을 건넸다. 없군﹣없군﹣돌아가라﹣돌아가라﹣
그의 말이 다시 텅 빈 식당에 울렸다. 나는 조용히 물컵을, 그 안에서 들끓고 있는 것들을 보았다. 그리고 물컵의 주둥이를 감싸 쥐고 그대로 식탁 위로 내리쳤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고, 나의 손바닥은 얇은 종이 쪼가리처럼 찢어져 투명한 물을 쏟았다. 힘껏 흘러가보게나.
그는 식당을 빠져나가고 나의 물은 그를 따라 흘렀다. 그는 창밖의 나무에 올라 밧줄 사이로 목을 넣었다.
천사처럼 다소곳하게 양손을 모았다. 마치 처음 태어난 아기 같았다. 
 
64P, 죽음의 집의 기록
그는 완성하지 못한 소설의 마지막 장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처럼 발밑까지 낯설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풀은 다시 자라나 그의 검은 발바닥을 간질이고 있었다. 슬픔의 소녀들은 화관을 쓰고선 바람에 흔들리는 종처럼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있었다. 
 
- 쓰던 소설을 덮고 그는 집 바깥으로 나왔다. 봄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들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선 흰 불꽃 모양의 나무 위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새에게 집을 지으라고 명령한 것을 누구일까. 물이 흔들리며 둥글고 투명한 말을 건네듯, 그토록 부드러운 명령이라니. 그는 조심스레 발밑의 풀을 한 움큼 뜯었다. 풀이 끊어지는 소리와 감촉이 손끝으로 번져왔다. 이렇게나 부드러운 명령이라니. - 그는 생각했다. 소설 마지막 장의 첫 문장을. 
그는 새가 사라져간 나무 위로 하얗게 빛나는 두 다리는 보았다. 
당신을 쓰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봄이 두다리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 - 저기 있다. 그는 손을 뻗었다. 이미 손톱은 뒤집혀 있었고, 붉고 굵은 피가 그의 팔꿈치에 둥글게 맺혀 종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손끝에 그 다리가 닿으려는 순간, 그의 육신 어딘가에서, 풀이 끊어지는 소리와 감촉이 번져왔다. 그렇게 그는 나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정신을 차리자 그의 몸은 움푹 패어 있었고, 그 속에서 연한 풀잎들이 자라나 있었다. 흔들리고 있다. 
 
- 자목련 꽃잎이 다독거리는 슬픔의 손처럼 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67P, 우연
기억과 망각이라는 폭력이 제공하는 안온함 속에 -
- 밤이 끝나도 하얀 꿈이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69P, 젖은 책
젖은 책을 볕 아래 놓고선 텅 빈 몸을 생각한다. 
몸을 덮고 있는 오래된 티셔츠, 늘어난 목, 오후 내내 뜯어내도 다시 생기는 보풀을 생각한다.
울고 주름지고 헐거운 삶. 바싹 마른 페이지를 조심스레 펼칠 때 책은 처음 날개를 펼치는 새의 소리를 낸다. 
 
- 마음이 앞서면 책이 찢어지고 아이는 돌아오지 못한다. 
사냥꾼의 감긴 눈에 고이는 죽음의 물 같은 가장 무거운 투명으로 붙은 페이지들. 
흩어지고 찢어진 글자들, 밤사이
 
- 보이지 않으나 망가되지 않는 것들이,
망가되지 않도록 부서진 것들이,
그래서 끝나지 않는 것들이, 
 
- 나는 책을 펼치지 못한 채, 젖은 알몸을 볕 아래 누인다. 
 
74P, 이 문장을 끝내지 못한 곳에서
망각이 용서를 낳는다고 했던가, 그 용서가 영혼을 병들게 만든다고 했던가.
딸아이와 함께 나온 초저녁 산책 길에 본, 죽은 나무 그늘 아래 죽은 잿빛 비둘기와, 죽은 새끼 고양이와, 이미 죽어있던 것들, 갓 죽은 것들. 
울던 딸아이를 달래 그네에 태우고 힘껏 밀다 보면 집집마다 뿌옇게 등 켜지고, 딸 아이는 죽은 풍경을 잊고,
그네를 타며 작고 둥근 머리를 치켜들고 제 집이 몇 층인지를 헤아리고, 그렇게 높고 가파르게 적재된 가정들 틈에서 나는 선한 의지와 땅과 몸, 얕고 서글픈 역사, 눈 밖에 있는 자들 등만을 딴에 멋지게만 기억하려 하겠지. 어쩔 수 없는 걸까. 과연 그럴까? 그럴 수밖에 ・・・・・・
이 문장을 끝내지 못한 곳에서, 이렇게 함께 너와 느릿느릿 춤추다 어리석게 늙어가면 좋겠다만, 나의 무능과 실패로 짠 지옥이 자칫 네게 시작될 것만 같아서.
차마 이 부끄러움 속을 너와 함께 걸을 수 없어서. 
 
75-76P, 엘레지
- 그림자로만 남아 있는 마음.
몸도 없이 겨울의 영토를 거슬러 날아가는 억센 날개.
나는 달리지 못하는 말의 신세지만, 여전히 새벽의 순한 빛의 조각들 모아
모음 같은 음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그 첫 음을 기다리고 있다면, 
검은 물 품고 있는 구름을 지나, 저 박명 거슬러 당신이 누워 있는 그늘진 오솔길로 내처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 방 함마로 잘게 부숴
온종일 머리 위 창밖을 보며
눈을 기다리는 아이의 창에 뿌려주고선.
그러나 창에는 당신의 얼굴,
여전히 없는.
 
80-81 P, 마중
- 끊을 수 없는 손목처럼 질긴 빗속에서 휘청거리며 나무 몇 그루 뒷걸음질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볼 위에 무거운 꽃잎을 덮어주었다. - 
 
82-3P, 기일
가족이라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요. 가족이니까. 
 
87P, 소리경
- 이 생각과 생각의 소리가 만드는 아무렇지 않은 이 백지의 지옥은
둥근 눈알 닫고 보면 출구도 입구도 없는 숲이니
아니 빠져나갈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미로이니
말라붙은 나뭇가지 바람에 부러지는 소리,
말라붙은 나뭇가지 바람에 날아다니다 서로 부딪는 소리, 부딪는 모든 것 불꽃이 되는 소리,
혹여나 내가 듣게 될 소리, 
듣고 싶었던 소리 따위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나는 어쩌면 이 시끄러운 숲에 들어서기는커녕
잠든 나의 성스러운 가족이 깨지 않도록
이 눅눅한 방 바깥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것이 아니던가 - 
 
94P, 숭고
- 당신은 너무 멀리 오셨습니다
나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군요
잠과 낮을 잃어버린 채
눈을 감는다 이렇게 어두울 수가 있다니
눈을 뜬다 이렇게 어두워야만 한다니
이 믿음이 
이 증오가
마음의 선한 쓸모가 몸속 돌이 아닌 돌이 되어
제 아무리 씻겨도 문질러도 둥근 백골은 아니라서 -
 
98-99P, 마음 전부
이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비유를 만드는 일 같달까.
아버지의 구석진 장례식장에 온 사촌 동생 부부의 고귀한 옷차림 같은 거랄까. 
 
- 마음을 쏟는다는 말은 두 가지로 읽힌다. 최선을 다했거나, 더 이상 쏟을 것 없이 모든 것을 상실했거나. 
 
100-101P, 선으로부터
- 이것은 전부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 당신에겐 현재입니다. 창밖에 안개가 가득합니다. 아닙니다. 가득한 안개는 오늘 새벽의 것이고, 지금은 파랗습니다. 
내일은 구름이 새가 되고, 물고기의 눈동자가 되고 물의 글씨가 될 겁니다. 당신의 창밖은 어떤가요. 
당신은 읽습니다. 이것은 읽히고 싶습니다. 어느 욕구가 더 강할까요. 각자의 절실함은 다르고, -
 
- 당신은 읽었습니까. 헤아렸습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 있습니까. 내일의 비는 파토스처럼 쏟아질 겁니다. 
 
102P, 니힐리스트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첫 도둑질에 성공한 아이처럼 서가에서 책을 꺼내 밑줄을 확인하고 다시 꽂아 넣는 일뿐
 
104P, 대설
- 나는 어느 시기일까, 삶이 부끄러울 때마다
대책 없이 야위어
숨어 있을 그늘 끌어당길 때마다
낡은 수레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구름을 찢고
공중에서 눈바람이 내려오곤 했다.
 
 
 
 
 
mazeppa 끝
죽음에 관한 이야기, 어딘가 가라앉아 있는 시들이 많아 되려 멀리하게 됐던 시집
마음을 울리는 글도 있었지만 조금 기피했던 시집이다. 그래도 한 번 더 펼쳐보고 싶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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