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 : 아몬드

J:won 2024. 9. 28. 13:05

 

 
 
 

아몬드

작가 손원평







선천적으로 알렉시티미아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 감정을 찾아가고 사랑을 느끼는 성장 이야기

 
 
 
 
 


 
 
 
29P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40P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건,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 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저 평범하게 살길 바랐던 엄마의 소망, 사랑
 
 
50-52P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은 꿀이 될지 영원히 알 수 없더라도 나는 이 항해를 멈추지 않으리. 
 
의미는 전혀 와닿지 않지만 상관없다.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의 향을 느기며 한 글자 한 글자, 모양과 획을 눈으로 천천히 좇는다.
- 눈으로 천천히 글자를 더듬었다고 생각되면 이번엔 소리를 내어 읽어 본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 
 
- 글자를 씹듯이 음미하며 목소리로 내뱉는다. 계속 계속, 외울 때까지 계속. 
같은 말을 여러 번 되뇌면 말의 뜻이 흐릿해지는 때가 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자는 글자를 넘어서고, 단어는 단어를 넘어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그럴 때면, 내가 헤아리기 힘든 사랑이니 영원이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나는 이 재밌는 놀이를 엄마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사랑. 사랑. 사랑. 영원. 영원. 영원.
 
자, 이제 의미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백지였던 내 머릿속처럼.
 
 
54-55P
주름이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꽤 깊이, 그리고 길게 파여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늙는 걸 알았다.
- 엄마도 주름이 있네.
- 이제 엄마에게 남은 건 늙는 일밖에 없단다. 
 
- 하지만 엄마의 말은 틀렸다. 엄마에게 늙을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땐 그저 너무 바삐 살아서 늙는지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간다는 걸까 했는데
다시 이 페이지를 펼쳐 우연히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다른 의미였다는 걸 알았다.
 
 
59P
- 생일 축하한다. 
할멈이 말했다.
-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손을 조물거리며 덧붙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어딘지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날들이 있는 거다.
 
 
74P
늘 한 가지 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르침에는 좀 위배 됐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2P
내가 왜 장례식에 갔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어쩌면 아줌마가 나를 너무 꽉 안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32P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을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50-151P
- 근데 운명과 시간이라니, 무슨 얘긴데?
- 그러니까, 브룩 실즈는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거 .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지 못하잖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 길 가다 보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니까 뭐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라든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다리가 양쪽 다 없어서 배로 땅을 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었겠지.
- 그럴 거야. 어떤 방향이든. 그게 인생이니까.
 
 
 152P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154P
- 타고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말이야.
 
 
162P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 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168P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171P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183P
그저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아이 같았다.
 
 
186P
좋아하는 걸 말할 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낸다.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대해 이야기할 때면 "눈이 반짝거려" 하고 내게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무언가 기분이 묘해졌다.
 
 
192-194P
- 갑자기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내려앉았다. 무겁고 기분 나쁜 돌덩이가.
 
윤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
 
 
199P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앞질러 버린 몸이 여름에 입은 봄 외투처럼 불필요하고 성가시게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벗어 버리고 싶을 만큼.
 
 
228P
-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의 비밀을 한 가지쯤 알고 싶었다고.
 
- 그래서 알게 됐어?
고개를 저었다.
- 그 대신 다른 걸 얻었어.
- 뭔데.
- 곤이.
 
감동이양.. 
 
 
245P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 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52-255P
-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 진심이라는 단어 뒤에 찍힌 마침표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 마침표가 곤이의 삶을 바꾸기를 바랐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 엄마가 뭔가를 닦아 준다. 눈물이다.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말 중
평탄한 성장기 속에서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몹시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지, 
 
 
 

 

 

 
 
 
 
하루만에 읽은 책
책은 지루한 부분이 꼭 있기 마련이었는데 그 생각을 깨트려준 책이다
펼친 순간부터 술술 잘 읽혔고 멈추지 못해 끝까지 다 읽어버린 ! 
책을 읽어야겠다는 욕망 하나로 카페에서 늦게까지 책 읽다가 마지막 손님이 되었고
마감 시간 30분을 남기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아 흠뻑 젖은채 도착했지만 
책에대한 여운으로 마냥 특별했던 날이다. 
 
아몬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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