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 :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J:won 2025. 4. 17. 20:32

 
 
#말로의 책
 
말로의 책에는 말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로의 나이와 직업, 식성이나 취미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해진 적 없는 보다 은밀한 부분들까지
 
우리는 말로가 다리 많은 벌레를 무서워한다거나 한겨울에도 갑갑해서 양말을 신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볼 땐 귀의 모양을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말로는 생각보다 복잡한 인물이다
말로의 옛 연인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데려다 놓아도 그가 안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전부 다 알겠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는 그가 있어서 말로의 책은 지겹지 않다
말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언뜻언뜻 비껴날 때마다 이야기는 보다 알록달록해진다
 
하지만 책의 결말이 바뀌는 법은 없다
말로는 종종 자신이 누군가의 관상용 어항에 갇힌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모두가 이렇게 뻐끔거리며 살아간다는 생각을하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창밖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잠잠하던 저울추가 빠르게 흔들릴 때
정확히 10분 뒤 말로는 머리 위로 떨어진 벽돌을 맞고 죽는다
말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바다를 향한 걸음을 성큼 내딛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간다
 
어느 날 나는 나무가 되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무거웠지만 허리를 땅속에 묻으니 두 손이 자유로웠다
 
왜 하필 인적 드문 숲의 나무였을까 
골몰하는 사이 한 사내가 찾아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 쓰러져 잠든 그는 기억을 피해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시간부터 차례차례 그를 읽는다
갈피마다 사소한 불행이 끼어 있어 단번에 읽어 내려가기 힘든 책이다
도둑맞은 가방과 비에 젖은 빵 
허물어지는 집과 만발하는 아카시아 향기
 
가슴에 한 사람을 묻고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 장면에서는 흙 묻은 구두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는 플랫폼에 서서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호주머니 속의 사랑을 구겨버리고 이름과 질문을 버린다
 
책은 거기서 멈춰 있다 
텅빈 페이지 밖으로 종달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소리 없는 울음을 울다 가지 끝에 내려앉는다
 
모든 길은 하나의 밤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더 복잡한 책이 오고 있다
이 책은 엄마가 잠시 슬픔에 잠긴 사이 아이가 끓는 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불에 그슬려 빛에 찔려 물에 휘감겨 기어이 비참의 일가를 이루겠다는 듯이 
 
 
 
 
 
# 이것은 양피지가 아니다
 
누가 두고 갔을까, 머리맡에 돌돌 말린 양피지 한 자루
펼치면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순식간에 발치에 쌓이는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들
부서진 성벽과 폐허가 된 성도 있다
 
나는 황급히 양피지를 덮는다
그러나 여전히 발치에는 모래가 쌓여 있고 성은 허허로이 서서 달빛을 맞는다
그날이 첫 번째 밤이었다 그 뒤로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떠나온 곳이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쉽게 열리는 시간은 있어도 쉽게 닫히는 시간은 없다는 것
나는 매일 성벽을 수리하고 성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내가 자초한 것 열망하고 바스러뜨린
 
풀 한 포기 구름 한 점도 다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 다 되돌려야 하는 일일 뿐
 
나는 한 박자 늦은 시간을 살아간다
한 쪽 날개로만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또다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어깨는 어제보다 더 기울어져 있다
복원을 마치기 전까진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안희연 시인의 시집을 좋아한다 
여름 위의 언덕을 인상 깊게 읽어서인지 그 뒤로 눈길이 가는 것 같다
내용의 흐름이 크게 바뀌지 않으면서 이해가 잘된다고 해야하나
현대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안희연 시인의 시집은 독해가 쉽다
모든 시가 결말이 뚜렷하다 험난해도 결국엔 나아가는 것 하지만 결국 바라던 여정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시집이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무탈하고 평안한 삶보다 고난을 딛고 일어섰을 때 나오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책이 많은 것처럼 결국 내게 주어진 삶도 늘 잔잔할 수 없기에 잘 사는 것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올바르게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메이트라는 시 중, "잘 짜이고싶은 것은 아니야, 그보다는 불안을 사랑하는 쪽이 더 좋지 살아있으니까", "내가 담을 것과 내게 담길 것", "때로는 길을 잃기위해 신발을 신는다" 라는 구절들이 설명을 조금은 보태주는 것 같다.
내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따라 가치관의 충돌을 자주 경험하는데 그럴때에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해석하고 다시 또 적어내려가면서 내 가치관과 신념의 기준을 확립하는 것 같다 그러기위해선 부정적인 것들과 우울의 요소들을 잘 거르고 내게 득이될 수 있는 핵심적인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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